태평양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과 연합국, 특히 미국 간의 주요 전투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며 전면전으로 돌입했고, 이후 약 4년 동안 아시아-태평양 전역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이 전쟁은 일본 근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고, 전후 일본 사회와 외교, 군사, 정치 체제를 전면적으로 뒤바꾸게 된 역사적 사건이다.
▶ 일본의 전쟁 야욕, 어디서 시작되었나?
태평양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일본의 제국주의적 확장 야욕을 살펴봐야 한다.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서양식 근대화를 추진한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빠르게 키워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에서 모두 승리하며 제국주의 열강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거치며 대륙 침략에 속도를 낸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아시아 전체를 영향권 아래 두려 했다. 미국과의 마찰은 불가피했고, 일본은 점차 경제 제재를 받게 된다. 미국의 석유 및 철강 금수 조치는 일본 입장에서 치명타였다.
▶ 진주만 공습과 전면전의 시작 (1941.12.07)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 항공대는 하와이 진주만에 주둔 중인 미국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한다. 이 공격으로 미국 전함 8척 중 4척이 침몰했고, 항공기 수백 대가 파괴되었으며 약 2,400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이는 미국 내 강한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다음 날인 12월 8일, 미국은 일본에 공식적으로 선전포고한다.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된 순간이다.
▶ 일본의 초기 우세, 그러나 점차 밀리기 시작하다
전쟁 초기 일본은 연전연승을 거둔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주요 거점을 빠르게 점령하며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미국은 ‘도조 히데키’ 내각의 무모한 전쟁 수행에 대응하여 전면전을 준비한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은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일본은 항공모함 4척을 잃는 치명적 타격을 입고 해상 주도권을 상실한다. 이후 과달카날 전투, 필리핀 탈환 작전 등에서 일본은 점점 수세에 몰리게 된다.
▶ 가미카제와 본토 결사 항전의 그림자
전쟁이 길어지면서 일본은 극단적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자살 특공대 ‘가미카제’이다. 젊은 조종사들이 폭탄을 실은 비행기를 타고 연합군 함선에 돌진하는 장면은, 일본군의 광기 어린 결사항전을 상징한다.
전쟁 말기에는 민간인까지 동원해 본토 결사 항전을 준비했다. 미국의 오키나와 상륙 전투(1945)는 약 20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며 민간인 피해가 극심했던 전투로 기록된다. 이때부터 미국은 일본 본토 침공의 막대한 희생을 우려하며, 전쟁을 조속히 끝내기 위한 ‘비장의 카드’를 꺼내게 된다.
▶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 원자폭탄 투하와 종전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한다. 이어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두 번째 폭탄 ‘팻 맨’을 투하한다. 이 두 차례의 폭격으로 약 20만 명 이상이 즉사하거나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는다.
8월 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패전을 인정하며 항복을 선언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전체의 종전을 의미하는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을 상징하는 순간이 되었다.
▶ 전후 일본, 어떻게 달라졌나?
패전 이후 일본은 미국 주도의 점령 통치를 받는다. GHQ(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지휘 아래 군국주의 체제가 해체되고, **평화 헌법(1947년)**이 제정되며 일본은 ‘전쟁 포기 국가’로 전환된다. 천황은 ‘신의 아들’이 아닌 상징적 존재로 위상이 축소되었고, 민주주의와 여성 참정권, 교육 개혁 등이 진행된다.
또한 일본은 전쟁 범죄 책임으로 많은 지도자들이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회부되었다. 도조 히데키를 포함한 A급 전범들이 처형되었으며, 이는 일본 역사 인식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 마무리하며 – 태평양 전쟁이 남긴 교훈
태평양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닌, 일본의 침략주의와 세계 질서 재편, 식민지 해방, 인권 문제 등이 뒤엉킨 복합적 역사이다. 한국, 중국, 동남아 국가들이 겪은 참혹한 피해와 고통은 아직까지도 역사적 상처로 남아 있다.
이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 공부가 아니라, 현재의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일본의 외교적 태도, 그리고 평화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